서론: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패러다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2017)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영화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설경구, 김남길, 설현 등이 주연을 맡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마를 쫓으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치밀한 서사와 미장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며,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1.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자, 그리고 또 다른 살인자

주인공 병수(설경구)는 과거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다. 그는 자신의 살인 본능을 억제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어느 날 의문의 남자 태주(김남길)를 만나면서 다시 본능이 깨어난다. 병수는 태주를 새로운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며, 자신의 기억을 의지해 그를 추적한다. 하지만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면서 관객들까지도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영화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관객들은 병수의 시선에서 사건을 따라가지만, 그의 기억이 왜곡되면서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진다. 이는 기존의 범죄 스릴러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다.
2. 원신연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미장센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2013)와 구타유발자들(2006) 등 강렬한 액션과 서스펜스를 강조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특히 병수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연출이 탁월하다.
- 색감과 조명: 병수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착각을 표현하기 위해 색감을 의도적으로 조절했다. 따뜻한 조명과 차가운 조명을 오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 카메라워크: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기 위해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을 적극 활용했다. 클로즈업 샷으로 병수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액션 장면에서는 다이내믹한 롱테이크를 사용해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 편집 기법: 시간의 흐름이 불분명한 편집이 특징이다. 장면들이 비선형적으로 배치되면서 관객들도 병수처럼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기법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0)와 유사한 면이 있다.
3. 배우들의 열연 – 설경구와 김남길의 심리전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요소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다.
- 설경구(병수 역):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 때로는 무력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본능을 드러내며 캐릭터의 다층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 김남길(태주 역): 선과 악이 공존하는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섬뜩하게 연기했다. 태주는 과연 진짜 살인마일까, 아니면 병수의 망상일까? 김남길은 이를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끝까지 의문을 남긴다.
- 설현(은희 역): 병수의 딸 은희 역을 맡아 극의 감성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결말 해석 – 진실과 거짓 사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결말이다. 병수의 기억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암시되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끝까지 알 수 없도록 만든다. 이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 병수는 태주를 연쇄살인범으로 확신하지만, 병수 역시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 병수의 기억 속 살인 장면들은 과연 실제일까, 아니면 알츠하이머로 인해 왜곡된 기억일까?
- 태주의 정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며, 영화는 관객들이 직접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기존 스릴러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벗어나, 관객이 적극적으로 사고하도록 만든다.
결론: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 정체성, 죄책감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원신연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 설경구와 김남길의 열연,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 구조가 어우러져 한국 스릴러 영화의 또 다른 명작으로 남았다.
특히, ‘신뢰할 수 없는 화자’ 기법을 통해 관객들도 주인공과 함께 혼란을 경험하게 만들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열린 결말을 통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원작 소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감상해야 할 영화이며, 김영하 작가의 원작과 함께 보면 더욱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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