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Hereditary, 2018) 평론>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전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가족 비극과 오컬트 호러를 정교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서서히 스며드는 불안감과 충격적인 비주얼, 감정적으로 처절한 연출이 어우러지며, 21세기 공포 영화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 잡았다.
1. 가족 비극과 심리적 공포
이 영화의 핵심은 초자연적 공포가 아닌, 가족 내 갈등과 상실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공포다. 애니(토니 콜렛)는 최근 어머니를 잃고도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녀와 어머니 사이의 복잡한 관계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집안에는 기묘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감정 상태로 치닫는다. 특히 딸 찰리(밀리 샤피로)의 충격적인 죽음은 영화의 분기점이 되며, 유가족들의 심리적 붕괴를 가속화한다.
2. 연출과 미장센 – 미니어처와 현실의 경계
애니는 미니어처 아티스트로, 자신의 가족과 주변 상황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한다. 이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그녀가 현실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카메라는 종종 미니어처와 현실을 혼동시키며, 인물들을 마치 거대한 인형의 집 안에 갇힌 존재처럼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오싹한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3. 토니 콜렛의 명연기
토니 콜렛은 애니 역을 통해 절망, 분노, 광기에 가까운 슬픔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표현한다. 특히 가족 저녁 식사 장면에서 그녀가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감정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 폭발하는 듯한 생생함을 자아낸다.
4. 오컬트적 요소 – 페이몬의 의식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초자연적 요소가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애니의 어머니는 악마 ‘페이몬’을 숭배하는 집단의 일원이었고, 찰리의 영혼은 사실 페이몬의 숙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피터가 새로운 숙주로 선택되며, 영화는 절망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러한 오컬트적 요소는 영화 전반에 걸쳐 세심하게 암시되었으며, 결말에 이르러 모든 조각이 맞춰지면서 강렬한 충격을 안긴다.
5. 사운드 디자인과 촬영 기법
영화는 전형적인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 소리와 화면 구도를 활용하여 깊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찰리의 독특한 ‘혀 차는 소리’는 관객들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불어넣고, 어두운 화면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섬뜩한 이미지들은 보는 이를 서서히 공포로 몰아넣는다.
결론 – 가족의 비극이 곧 공포가 되는 순간
유전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트라우마와 슬픔, 유전되는 악몽을 그린 심리적 드라마다. 영화는 ‘공포’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력감을 극단적으로 탐구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 공포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이후 *미드소마(2019)*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을 이어갔다.
이 영화가 주는 진정한 공포는 악마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인간의 감정적 붕괴에 있다. 유전은 단순한 호러 이상의 깊이를 지닌 걸작이며, 본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불길한 인장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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