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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알아보자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수작, ‘박열(Anarchist from Colony, 2017)’이 울리는 역사적 울림

by 영화읽는 샐러리맨 2025. 3. 12.

조선 청년과 일본 여성, 두 혁명가의 뜨거운 저항 ‘박열’

 

1. 내러티브 구조: 법정 드라마와 캐릭터 중심 전개

‘박열’은 1923년 일본에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가 벌인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 실화 기반 영화다. 내러티브는 사건 발생 → 체포 → 재판 과정 → 결말의 흐름을 따라가는 전형적인 법정 드라마 구조를 갖추고 있다. 초반부는 박열과 후미코의 등장 및 일본 내 반제국주의 운동을 조명하며,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법정에서 일본 제국과 대결하는 장면들이 배치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두 주인공이 조선 독립을 주장하며 일제의 억압적 논리를 조롱하는 모습을 강조해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2. 주제와 철학: 저항 정신과 자유주의적 이념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식민지 조선 청년의 항일 저항과 사상의 자유다. 박열과 후미코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상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그려진다. 영화는 이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개인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후미코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스스로 일본 제국을 비판하며 저항하는 독립적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과 이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며, 당시 일본 사회 내 모순을 정면으로 지적한다.

 

3. 연출과 촬영기법: 흑백과 컬러의 활용, 법정 미장센

이준익 감독은 흑백과 컬러를 절묘하게 활용해 역사적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영화 초반과 후반부의 몇몇 장면은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마치 실제 기록 영상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또한, 법정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변화에 집중하는 클로즈업 샷을 적극 활용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로우앵글(저각도 촬영)과 대비적인 조명 연출이 돋보인다. 박열과 후미코가 법정에서 일본 관료들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로우앵글을 활용해 인물의 기개와 도전 정신을 강조하고, 반대로 일본 정부 측 인물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샷으로 잡아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반적으로 감옥과 법정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인물 간의 심리전과 논리 싸움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4. 배우들의 연기: 이제훈과 최희서의 강렬한 시너지

이제훈은 기존의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렬한 카리스마와 광기를 지닌 박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특히, 법정에서 일본 제국을 조롱하며 유쾌한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은 박열의 저항 정신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그의 연기는 단순히 웅변조의 항의가 아니라, 순간순간 보이는 도발적인 미소와 냉소적인 태도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최희서는 후미코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일본인 캐릭터임에도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단순한 여성 조력자가 아닌 독립적 사상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그녀의 연기는 감정적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말투 속에 숨겨진 단호한 신념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특히 후반부 법정 신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5. 결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여운

 
‘박열’의 결말은 극적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후미코는 결국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박열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일본 법정과 대립한다. 영화는 후미코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남는 강렬한 여운은, 단순한 독립운동 이야기가 아니라 사상과 신념을 지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총평

‘박열’은 단순한 항일 독립운동 영화가 아니다. 이는 사상과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운 두 청년의 이야기이며, 법정 드라마적 구성을 통해 사상적 대립을 효과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흑백과 컬러 연출의 적절한 활용, 두 배우의 강렬한 연기, 그리고 이준익 감독 특유의 시대극 연출 방식이 어우러져 깊은 감동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렬한 법정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